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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휴가

category 육아일기 2023. 8. 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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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휴가인 날
아침에 하린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려고 차를 태우는데, 어린이집을 안간다고 떼를 쓴다.
오늘은 아빠가 제일 먼저 데리러 간다고 했더니 순순히 안전벨트를 고쳐메면서 되묻는다.
다은이 리라 현모 은찬이네 아빠보다 먼저 오냐고.
그렇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와이프가 에어컨을 끄지 않고 출근 했다.
나를 위한 작은 배려

두시간정도 소파에 누워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실 오늘 머리를 자르려고 했는데
미용실 예약을 못했다.
당장 자르려면 25,000원을 내야 하는데
괜히 반발심이 생겨서
집에 있는 미용가위로
대충 스스로 잘랐다.

그리고나서
아파크 단지 내 사우나를 하고
단지내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리라
마음을 먹고 목욕용품을 챙겼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요일은
커뮤니티센터가 열지 않는다.

나는 사실 평소 P에 가까운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해 와이프 생일선물을 못해줬다.
나는 그저 와이프 스스로가 생일 선물로 샤넬 향수를 사리라 했던 말을 방패삼아 방관한것이다.
당연히도 와이프는 생일 당일 매우 실망했다.
올해 8월 10일은 딸아이가 고열로 몹시 아팠고
6호 태풍 카눈이 왔고.
와이프는 저녁을 먹지 않고 잠들었다.

그래서 오늘 딱 한가지만큼은 정했다.
아침나절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오후만큼은 무조건 판교 현대 백화점 1층 샤넬 매장에 가서 오드 드 퍼퓸을 사오겠다고.

월요일 정오 즈음
쓰잘데 없이 차가 너무 많다.
백화점 주차장 진입하는데만 30분 줄을 섰다.


어찌저찌 주차하고
일단 끼니를 때우러 지하 1층 식당가에 왔는데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
뭘 먹어야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간도 많고 돈도 충분히 있으므로
그냥 여유롭게 둘러보다가
천천히 줄 서서 먹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무엇이 나를 재촉했을까
문득 콧날이 오똑한 젊은 청년이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멀끔한 정장을 멋지게 빼 입고서
탄탄멘을 후루룩 먹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시선을 끌어 당기는지라
나도 옆자리에 앉았다.


매콤한 국물의 라면 이었고
맛은 솔직히 평범했다
가격은 13,000원 이었는데
사실 여기 푸드코트에서 가장 싼 가격이 아니었을까?
여긴 우동도 18,000원 줘야 먹는다.
면은 살짝 설익힌 스타일로 타다다닥 끊어지고
국물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애매한 맛에
땅콩 분태가 씹히는 맛 이었다.

다 먹고 나니 몹시나 탄산음료가 당겼다.

바로 1층으로 올라가
샤넬 매장에 방문했다.
애초에 사려고 했던 향수 외에
대여섯가지 시향 했다.
묵직한 향
부드러운 향
시큼새콤한 향
꽃 향
그리고
뭔 프리미엄 어쩌구 향..

나중되니 내가 뭘 맡고있는지도 모르겠다.
샤넬 No.5에도 종류가 여러가지더라
내가 선택한 향수가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와이프에게 물어보는거도 모양이 빠진다.
물어보면 분명 사지 말라 할테지.

그냥 처음부터 생각하고 왔던 향수로 샀다.
25만 5천원.
천원 만원 짜투리들 일년 모은걸로 샀다.
어차피 내게는 필요 없는 돈이다.
다만
우리 가족에겐 필요한 돈이지.
그래서 분명 와이프는 사지 말라 했을거다.
나는 내 이기심에 소비 했다.

그냥 나는
판교 현대백화점 1층과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고객이었지만 이방인이었다.
검정색 운동화에
청반바지
그리고
주황색 티를 입고
셀프로 대충자른 삐죽한 머리를 하고있는
설늙은 아저씨였다.

문득 거울을 보면
주름이 자글하고
기미에 .. 약간의 죽음꽃.
그리고 흰머리

외모에 맞지 않는 차림새
차림새에 맞지 않는 장소
장소에 맞지 않는 인간

아주 멀끔한 장소에
혼자 덩그러니 와서는
쓰잘데없이 외로움만 느끼고 간다

아주 잠시 몇층을 스치듯 둘러 보았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다
쉬는날 혼자 집에 있어도
할만한 취미 생활도 없고
밖으로 나와도 도리가 없고
친구도 없고
돌이켜보니 이젠
내 가족들과의 생활 외에
내게 남은것이 무엇인가

와이프의 뒤늦은 생일 선물을 사면서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잠깐의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선물을 받고 좋아해줄 와이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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