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송파] 제주 은희네 해장국

category 사먹고살기/맛집 2020. 9. 23. 19:21

딸아이가 태어난지 5일째 되는 날.
산부인과에서 조리원으로 옮겨왔습니다.
20시간 산통 끝에 제왕절개로 나온 우리 딸.
엄마도 너무 고생이 많았죠.
그래도 이젠 어느정도 진정이 되어서
몰려오는 허기를 달래러 나왔습니다.
조리원 바로 앞 찌개집을 갈까, 해장국 집을 갈까 하다가 뜨끈한 국밥을 먹기로 하고 들어왔습니다.
해장국 9천원.
내장탕 만원.

해장국을 시켰습니다.
파가 듬뿍 썰려 올라왔습니다.
간마늘을 따로 주는데
다 때려 넣었습니다.
고추는 엄청 맵습니다.
팔팔 끓는 뚝배기를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속이 뜨끈해지는 느낌입니다.

약간의 다대기가 들어있고
당면이 엄청 많이 들어있습니다.

내용물을 보면 습자지같이 얇게 저민 수육 두어점에 선지 한조각이 전부입니다. 내용물의 대부분은 콩나물과 당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번 뒤적여 양념장을 풀어주는데
솔직히 살짝 실망했습니다.
제가 원한건푸짐한 고기나
순대, 내장들이 들어간 비주얼이었는데
나온건 콩나물 선지해장국이었으니까요.
묵직한 느낌의 속을 가득 지져주는 국밥을 원했는데
맑고 시원해보이는 콩나물 해장국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국물을 한술 떠보니 생각이 바꼈습니다.
깔끔한 국물인데, 국물에 감칠맛이 가득 차서
심지어 묵직한 느낌이 듭니다.
당면도 찜닭같은데 들은 찐득하고 질긴 당면이 아니고
앞니에 닿으면 토도독 끊어지는 당면입니다.
일단 당면을 어느정도 건져먹다가 밥을 투입합니다.
밥은 2/3공기정도 들었는데
처음엔 가득 담겨져 있지 않은 밥공기를 보고
인심 참 박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밥을 말고 보니 양이 딱입니다.
선지도 달고 맛있습니다. 잡내 없습니다.
오히려 고기나 내장이 없어서 끈적하지 않고
깔끔한 국물맛이 일품입니다.
그러면서 감칠맛은 폭발합니다.
한수저 뜨면 혓바닥이 난도질 당하는 느낌.
하뜨하뜨 정신없이 빨아먹다보니
국물까지 싹 비우고
뚝배기는 바닥을 보입니다.
부족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더 먹고싶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미련없이 일어나서
카운터 앞의 누룽지 사탕 하나 들고 나옵니다.

몸 전체가 뜨끈해져서
이마에는 땀이 송골 맺힙니다.

땀이 식으면서

추석 직전의 저녁 가을 바람이
으슬으슬 춥다 싶을정도로 느껴집니다.
사우나 들어갔다 나와서
냉탕으로 다이빙한것 같은 시원함,
그리고 개운함,
또는 간질거림 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오늘 하루의
평범한 마지막 한끼를 기분좋게 해치우고
태어난지 닷새된 딸 얼굴을 보러 들어갑니다

반응형